이권재의 오산이야기 #2

2020. 7. 28. 19:17이권재의 오산 이야기

제 고향은 전남 진도군 지산면 고야리.

남녘의 섬마을에서 72,

아홉남매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마을 뒷산에 올라가면 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솟아있고,

목포와 제주도를 오가는 배, 어선들이,

꽁무니에 하얀 물보라를 일으켰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팽목항이 근처입니다.

고향마을에서 고야국민학교와

십리 가까이 떨어진 지산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도 고향 친구들 만나면,

학교를 오가는 길가 밭에 있는

무우와 옥수수로 배고픔을 달랬던 이야기를 합니다.

고향에서 면장을 7년이나 지내신,

아버지가 중학교때 갑자기 돌아가시자,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워져 고등학교 진학이 무리였지만,

목포 큰 누나집으로 옮겨 홍일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198710, 30개월 군대생활, 육군병장으로 제대한 뒤,

복음요업이라는 도자기회사에 취업했습니다.

저는 영업을 맡아서,

밑바닥부터 한사람, 한사람 만나서 설득하며,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이 산을 옮긴다고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과 열정을 다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젊은 나이에 회사를 총괄하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19881210,

같은 직장, 같은 교회를 다니던 아내와,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전남 영암이 고향인 아내 또한 639남매중 막내였습니다.

아내는 늘

제가 부지런한데다, 성실하고 믿음직해서

결혼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오산에 올라와 우유대리점을 하던 겨울날.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오토바이가 길바닥에 미끄러져,

우유갑이 터졌습니다.

이른 새벽, 누가 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주위를 살피며 손을 호호 불며,

몸 다친 것은 살피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터지지 않은 우유를 골라 깨끗이 닦아서,

오토바이에 실어주면 다시 배달하러 나갔습니다.

어머니가 자주 올라와서

아이들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에,

아프거나 힘든 내색도 못했습니다.

늘 밝은 안색으로,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처럼,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한번은 발안 대리점에 우유를 가져다 주고 오는데,

신호위반을 했습니다.

경찰관이 차를 세워 스티커를 떼려다 안을 들여다 보더니

봐 주겠다고 했습니다.

피곤에 지친 부부, 낡은 차안에서 엄마 품에 잠든 어린 딸,

그 옆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있는 아들을 보고는,

마음이 약해졌던 모양입니다.

 

 

우유 대리점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1995.

고름우유 파동이 터졌습니다.

고름우유라는 말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우유를 넣지 말라고 대문에 쪽지를 붙이거나,

반품을 요구했습니다.

더 일찍 일어나서, 두 번, 세 번 더 고객을 방문했습니다.

아이를 차안에 재워놓고, 한집한집 방문하며 설명을 했습니다.

이런 성실함으로 전국 최우수 대리점으로 두 번이나 선정되었습니다.

오산 관내 가정과 학교에 질 좋은 우유를 납품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영업의 귀재라는 칭호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이권재에게 받은 물건은 틀림없다라는 고객들의 신뢰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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