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3. 16:34ㆍ이권재의 오산 이야기
-한미동맹의 도시,오산-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韓 美 北 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다시한번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 오산은 한미동맹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입니다.
우선 오산 미공군기지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전용기가 내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동지역 최전방 미군기지 오산AB(Air Base)는,
사실 오산이 아닌 평택에 있습니다.
한때 TV 개그프로그램에서 유행한 말처럼,
“오산비행장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살짝 오산입니다.^^”
오산비행장은 평택시 송탄지역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산 공군기지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1951년 기지를 만들 당시, 지도에는 오산리만 표시되어 있었고,
송탄(Songtan)보다 오산(Osan)이 발음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산시 북쪽, 외삼미동 1번국도 옆에는 <UN군 초전기념관>이 있습니다.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UN은 북한군 격퇴를 결의했고,
미국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6월30일,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24사단에게
한국 출동을 명령했습니다.이에따라 7월1일,스미스 대대장을 비롯한 540명의 <스미스 대대원>들이 부산항에 내려,기차를 타고 7월2일에 대전역에 도착한뒤 오산 죽미령에 진지를 구축합니다. <스미스 대대>는 7월5일 아침 수원을 거쳐 내려오는 북한군과 마주하는데,
33대의 탱크, 보병의 행렬이 수km에 달했다고 합니다.
오후까지 치러진 전투에서 <스미스 대대>원 150명이 전사하고,26명이 실종됐습니다.
부족한 병력에 북한군 탱크를 막을 무기가 제대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미동맹을 ‘혈맹’이라고 하는데,죽미령 고개의 전투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우리 오산지역의 문인,
허시중 시인이 쓴 <죽미령>이라는 시입니다.
초전이 벌어지던 그날
파란 눈의 용사들 초개와 같이
스러져갔고
그들의 죽음을 담보라 찾은 평화
우린 그 자리에서 휴식하고
오수도 즐긴다.
까치들도 낙엽송 꼭대기에
둥지를 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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