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재의 오산이야기 #6

2020. 8. 3. 16:47이권재의 오산 이야기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저는 늘 아내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12년간 우유대리점을 하면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험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두 아이가 무탈하게, 건강하게 자라준 것에 대해서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일년에 몇 달은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 오셔서,

단칸방에 함께 지내면서 아이들을 돌봐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을 때는,

세 살배기 아들과 갖난 딸, 우리 네 식구는 봉고차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만약 그 무렵 아이들이 크게 아프기라도 했다면...

당시에 우유대금 수금은 주로 아내가 했는데,

딸 아이를 등에 업고, 네 살된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서 대우,은계동 아파트와 수청동까지 다녔습니다.

아이들이 불쌍해보였는지, 어떤 분들은 비닐봉지에 사과를 담아서 손에 들려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릴적 아이들을 고생시킨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저는 남들보다 몇배나 학부모회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특히, 어릴적부터 축구를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닌 성호초등학교의 축구등 체육지원에 앞장섰습니다.

오산지역 조기축구회 활동은 물론, 오산시 축구연합회 부회장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애초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업이 점차 번성해갔고, 오산시 축구연합회 부회장,

경기도 축구협회 부회장등 스포츠와 봉사활동에 재미를 느끼며 살았습니다.

제가 참여한 봉사단체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어

3명의 부회장중 한명이 회장을 맡아야 했습니다.

고향을 따지고, 좁은 오산 안에서 지역을 나누더니,

결국 지역 단체장의 뜻에 따라, 전혀 활동을 않던 사람이 회장이 됐습니다.

이런 일을 자주 겪으면서, 정치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어떤 방향과 리더십을 갖느냐에 따라

지역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접 정치에 참여해서 지역 주민들이 진정하게 원하는 일을 하고,

올바르게 해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그때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왜 호남출신이 한나라당에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이냐?”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정치철학에 따라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고,

오산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지 고향을 왜 따지느냐.

오산에 살면 오산이 고향 아니냐고 대답하지만,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2012<오산발전포럼>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6년간,

오산발전을 위해 수 많은 이슈를 다루고 대안을 만들어 왔지만,

단 한번도 당리당략에 좌우된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걱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낙천주의자입니다.

살아오면서 어떤 역경에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진실과 정의, 진심은 결국 통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고집불통’, ‘외골수’, 돈키호테가 늘 되내였던 말입니다.

 

세상에는 언제나 두개의 길이 있습니다.

돌다리가 놓여있는 안전한 길,그리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대부분 사람들은 안전한 길을 가지만,

최후의 승리자는 늘 반대의 선택을 합니다.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저의 소원은

앞으로도 우리가 살아갈 오산땅.

우리 후손의 후손들까지, 기쁨과 행복한 오산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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