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3. 17:01ㆍ이권재의 오산 이야기
-오산, 화성, 수원 세 도시의 이야기-
공부를 해보니,
오산과 수원, 화성은 오래전부터 하나였습니다.
오산시 지곶동에 있는 독산성은 삼국시대 영토전쟁 중,
백제가 쌓은 성,
지곶동 세마산에 있는 보적사 역시 5세기 초반 백제시대에 창건한 절입니다.
이때는 오산 화성 수원 일대가 백제의 영토였다는 얘기죠.
우리 지역이 7세기 무렵 고구려 영토에 속했을 때는
매홀군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 후 8세기 통일신라 때는 수성군,
14세기 고려시대에 수원군이 됐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인 1899년 2월, 수원군에 4개 면(청호, 문시, 산성, 초평)이 통합되어 성호면이 설치되었고,
1941년 오산면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지명이 오산이 된 이유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독산성의 독산 발음이 변해서 오산이 되었다는 주장,
들판에 까마귀(烏)가 많아서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1949년에는 수원군이 화성군으로 개칭,
화성군 오산면이 되었습니다.
이후,
1960년 1월 오산면이 화성군 오산읍으로 승격,
1987년 1월 화성군 동탄면 금곡3리를 편입,
1989년 1월 오산읍이 오산시로 승격(6개동),
1995년 4월 평택군 진위면 갈곶, 고현, 청호리 일부가 오산시로 편입되는 등
지역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산시 한복판 롯데마트 앞에는 1970년,
수원시내에 있던 화성군청이 옮겨온 자리 터가 있습니다.
오산이 화성의 한복판이었다는 얘기죠.
이렇게 오산과 화성, 수원은 역사, 문화적으로 하나,
동일 생활권이었습니다.
오산에 살면서 화성에 있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 수원에 있는 대학원을 가는 식입니다.
저도 낮에는 수원에 가서 아는 사람과 점심을,
저녁에는 수원이나 화성의 지인이 오산에 찾아와,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산 화성 수원 3개시를 통합하자는 움직임이
간간히 있어 왔습니다.
바로 ‘산수화 구상’입니다.
‘산수화’는 (오)산 수(원) 화(성)의 이름을 따온 것이죠.
그런데 지금 수원의 인구는 무려 120만,
화성이 70만, 오산이 22만 명이니까
세 도시를 합하면 인구 210만 명의 거대 도시가
탄생하게 됩니다.
충청남도보다 인구가 많고,
대구시와 비슷한 도시가 되는 겁니다.
이것은 중앙정부도 꺼리는 일이기 때문에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세 지역을 합해서
‘정조특별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는데요.
3개시를 꼭 통합하자는 것보다
수원 화성을 축조한 정조대왕의 이름 아래,
세 도시간의 벽을 허물 자는 취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건설적인 논의가 매번 중단된 것은
딱 한 가지 이유입니다.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등 기득권자들의
당리당략, 자리보전 때문입니다.
세 도시는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제가 오산시장 출마선언을 하면서
오산-화성시 통합을 공약으로 내건 것은
세 도시의 이런 숙명 때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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