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이야기(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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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재의 오산이야기 #6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저는 늘 아내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12년간 우유대리점을 하면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험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두 아이가 무탈하게, 건강하게 자라준 것에 대해서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일년에 몇 달은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 오셔서, 단칸방에 함께 지내면서 아이들을 돌봐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을 때는, 세 살배기 아들과 갖난 딸, 우리 네 식구는 봉고차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만약 그 무렵 아이들이 크게 아프기라도 했다면... 당시에 우유대금 수금은 주로 아내가 했는데, 딸 아이를 등에 업고, 네 살된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서 대우,은계동 아파트와 수청동까지 다녔습니다. 아이들이 불쌍해보였는지, 어떤 분들은 비닐봉지에 사과를 담아서 손에 들려주..
2020.08.03 -
이권재의 오산이야기 #5
-한미동맹의 도시,오산-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韓 美 北 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다시한번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 오산은 한미동맹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입니다. 우선 오산 미공군기지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전용기가 내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동지역 최전방 미군기지 오산AB(Air Base)는, 사실 오산이 아닌 평택에 있습니다. 한때 TV 개그프로그램에서 유행한 말처럼, “오산비행장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살짝 오산입니다.^^” 오산비행장은 평택시 송탄지역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산 공군기지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1951년 기지를 만들 당시, 지도에는 오산리만 표시되어 있었고, 송탄(Songtan)보다 오산(Osan)이 발음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2020.08.03 -
이권재의 오산이야기 #4
-너무 좁은, 젊은도시 오산- 화성군 오산읍이 오산시로 승격한 것은 1989년 1월1일입니다. 1993년 제가 오산에 올라왔을 때는,시로 승격한지 4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지금은 아파트와 상가가 빼곡히 들어선 운암뜰도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오산시를 통틀어 아파트라곤, 오산IC 근처에 한주아파트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올라오기 직전까지, 오산과 화성 일대는 연쇄 살인사건으로 흉흉했습니다. 넓디넓은 화성벌판, 국도 1호선과 지방도로 주변은, 민가가 없어서 해만 지면 유난히 어두웠고, 그런 환경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봉고차와 오토바이에 우유를 싣고, 국도 1호선을 따라 북쪽으로는 수원 영통, 서쪽으로는 화성시 발안,조암,남양,사강 일대를 누볐습니다. 오산시 면적은 42.7..
2020.08.03 -
이권재의 오산이야기 #3
-오산에서 맺은 인연들- ‘고름우유 파동’ 같은 어려움도 많았지만, 1년 365일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성실과 신용을 최우선으로 우유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점차 자리를 잡아갔고, 형편도 좋아졌습니다. 우유대리점을 낸지 12년째 되는 해인 2004년,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8월 오산에 새로 개원한 한국병원에 장례식장을 열었습니다. 장례식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오산에서 맺은 인연이 저를 새로운 사업으로 이끌었습니다. 제가 처음 오산에 올라와 대리점을 내고, 살았던 곳은 국도 1호선이 지나는 오산동 시민회관 앞이었습니다. 저보다 몇 년전에 올라 와서, 같은 동네에서 약국을 하던 고향 선배님은, 저희 부부에게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준 평생의 은인입니다. 우유값 수금이 여의치 ..
2020.07.31 -
이권재의 오산이야기 #2
제 고향은 전남 진도군 지산면 고야리. 남녘의 섬마을에서 7남2녀, 아홉남매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마을 뒷산에 올라가면 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솟아있고, 목포와 제주도를 오가는 배, 어선들이, 꽁무니에 하얀 물보라를 일으켰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팽목항이 근처입니다. 고향마을에서 고야국민학교와 십리 가까이 떨어진 지산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도 고향 친구들 만나면, 학교를 오가는 길가 밭에 있는 무우와 옥수수로 배고픔을 달랬던 이야기를 합니다. 고향에서 면장을 7년이나 지내신, 아버지가 중학교때 갑자기 돌아가시자,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워져 고등학교 진학이 무리였지만, 목포 큰 누나집으로 옮겨 홍일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1987년 10월, 30개월 군대생활, 육군병장으로 제대한 뒤, 복음요업이라..
2020.07.28 -
이권재의 오산이야기 #1
경칩도 지나서, 절기상으로는 봄이지만, 날씨는 쌀쌀하기만 합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25년전 이 무렵. 저는 목포에서의 직장생활을 접고, 오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중소기업에 입사한지 몇 년만에 경영을 총괄할 정도로, 성공한 샐러리맨이었습니다. 첫 직장에서의 열정, 신혼의 달콤함에 빠져있을 때, 우유 지역대리점권을 받아 첫 사업을 시작하려던 매형이 교통사고를 당하시는 바람에, 오산으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딸 아이를 낳은 지 20일 밖에 되지 않아,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이사하던 그날, 눈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오산으로 이사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이사한 단칸방은 부엌과 화장실이 붙어 있을 정도로 좁아..
2020.07.28